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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현지 레스토랑 셰프가 "이 음식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저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언더커버쉐프 파르마 편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든 생각인데, 맛있다는 평가와 메뉴에 올라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이 프로그램이 놓친 것 같습니다.

리조토는 맛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을까
파르마 편에서 권성준 셰프가 만든 리조토는 실제로 현장 반응이 좋았습니다.
표고버섯을 활용한 리조토에 버터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를 마무리로 얹는 구성이었는데,
이탈리아 셰프들도 "기술이 있다", "간이 잡혔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파르마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DOP 인증 경질 치즈로, 리조토의 마무리 재료로 현지에서도 빠지지 않는 핵심 재료입니다.
제가 이 회차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 정도면 메뉴에 올라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예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였습니다.
현지 셰프는 리조토의 균형 자체보다 "이 음식이 우리 식당을 말하는가"를 먼저 물었거든요.
테라르 드 퀴진(Terroir de cuisine)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테라르란 원래 와인에서 쓰는 용어로, 특정 지역의 토양·기후·문화가 음식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것을 뜻합니다.
파르마 레스토랑이 수십 년간 지켜온 리조토 레시피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로컬리티(locality),
즉 그 지역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표고버섯을 쓴 순간 이미 파르마 스타일과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현지 셰프의 지적이 바로 그 얘기였고,
저도 이 부분을 몇 번 다시 돌려보고 나서야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크라코(Cracco) 같은 이탈리아 파인다이닝 레전드 셰프가 전화 한 통으로 등장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크라코는 밀라노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마스터셰프 이탈리아 심사위원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 셰프가 권성준 셰프를 가리켜 "한국 이탈리안 요리의 기준점"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분명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에서 오히려 더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것과, 그 식당의 메뉴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요.
- 리조토 마무리: 버터 몬터르(monter au beurre) 기법 — 버터를 낮은 온도에서 조금씩 넣어 소스에 광택과 풍미를 더하는 방식
- 표고버섯의 단맛과 포르치니(porcini)의 향 차이 — 파르마 현지 기준에서 향의 강도가 다름
-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DOP 인증 — 유럽연합이 원산지 보호 지정한 치즈로, 파르마 외 지역 생산 불가
메뉴 등재 실패가 아니라 제작 의도의 한계였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의 팬이었고 회차별로 여러 번 봤습니다.
그런데 파르마 편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제작 의도 자체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5일 안에 현지 식당 메뉴에 올린다"는 전제 자체가 조금 무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폴리 편의 Fenesta 레스토랑 라우라 사장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한마디가 저한테는 이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처럼 들렸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스타 셰프라도, 그 식당이 수십 년간 쌓아온 프로토콜(protocol),
즉 메뉴 선정 기준과 음식 철학을 단 5일 만에 체화하고 그 위에 자기 색깔을 얹는 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정체를 밝히는 언베일링(unveiling) 장면에 대해서도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유럽 문화권, 특히 이탈리아에서 신뢰(fiducia)는 관계의 가장 근본입니다.
중세 유럽의 건배 문화처럼, 상대의 잔에 내 술이 넘어가게 잔을 부딪히는 건 "나는 당신을 독살하지 않겠다"는 신뢰의 몸짓이었습니다.
그 문화권에서 "사실 나는 초보가 아니었다"고 밝히는 순간 잔피(Giampi)가 보인 반응,
"속았다!"는 표정은 그냥 리액션이 아니라 그 문화권의 진심이라고 저는 봤습니다(출처: Treccani 이탈리아 문화 백과).
반면 안토니오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장면은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게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선량함인지, 아니면 카메라 앞이라 그런 건지 제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그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살렸습니다.
정체가 밝혀진 뒤 어색해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이 포맷 자체를 바꾸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정체 공개 없이 그냥 한국에서 식당 친구들을 초대해 여행 프로그램을 한 편 더 만들었으면 훨씬 자연스럽지 않았을까요.
속임수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됐을 겁니다.
정지선 셰프의 사천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5일 만에 웍(wok) 기술을 익혀 요리를 완성한 것 자체는 정말 대단한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웍이란 중국 요리에서 쓰는 반구형 철제 팬으로, 고온의 화력을 순간적으로 다루는 웍헤이(wok hei) 기술을 체득하는 데만 보통 수년이 걸립니다.
그 기간에 기본기를 잡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일인데, 굳이 메뉴 등재까지 욕심을 낸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출처: Serious Eats, Wok Hei 설명).
제 경험상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은 "과정의 진정성"이 살아 있을 때 가장 좋았습니다.
메뉴 등재라는 결과보다 매일 밤 주방에서 같이 식사하고 실수하고 배우는 장면들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언더커버쉐프 파르마 편에서 리조토가 실제로 메뉴에 올라갔나요?
A. 방송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정식 메뉴 등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지 셰프는 맛과 기술은 인정했지만, 파르마 레스토랑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메뉴 편입에 선을 그었습니다.
맛이 좋다고 해서 그 식당의 메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이 장면이 가장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Q. 파르마 편에서 전화 통화로 등장한 크라코 셰프는 누구인가요?
A. 카를로 크라코(Carlo Cracco)는 밀라노에 본인 이름을 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타 셰프입니다. 마스터셰프 이탈리아 심사위원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이탈리아 요리계에서 레전드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방송에서 파르마 현지 셰프와 절친 사이임이 드러나며 화제가 됐습니다.
Q. 정체를 밝히는 장면이 왜 어색하게 느껴졌을까요?
A.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문화권에서 신뢰는 관계의 핵심 가치입니다. "사실 나는 스타 셰프였다"고 밝히는 언베일링은 함께 일한 동료 입장에서 신뢰가 깨지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잔피의 반응이 단순한 리액션이 아니라 그 문화권의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면, 어색함의 이유가 충분히 납득됩니다.
Q.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일반 파마산 치즈와 다른가요?
A. 다릅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이탈리아 파르마, 레지오에밀리아 등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DOP(원산지 보호 명칭) 인증 치즈입니다. 최소 12개월 이상 숙성이 필수이며, 성분·생산 방식·지역 모두 엄격히 규정됩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일반 파마산 치즈는 이 기준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풍미와 질감에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
언더커버쉐프 파르마 편은 제가 가장 여러 번 돌려본 회차 중 하나입니다. 맛있는 리조토를 만들었고, 크라코 같은 레전드 셰프에게도 인정받았지만, 그 식당의 메뉴에 오르지 못한 결과가 오히려 더 솔직하고 정직한 결말이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다음 시즌을 기획한다면, 저는 메뉴 등재 미션 대신 현지 식당 동료들을 한국으로 초대하는 형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속임수 없이, 서로의 음식 문화를 나란히 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가 될 겁니다. 진짜 신뢰 위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교류가 어떤 모습인지, 그게 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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